복자스토리 - 9부_by 야설

복자스토리 - 9부_by 야설

일딸 0 346

복자에요.


기찻길 걸어보셨나요?


전 초등학교 다닐때 기찻길을 걸어서 등교를 했습니다.


길게 휘어져 돌아가는 철길의 구린듯한 쇠냄새가 기억납니다. 기차 다니는걸 못봤으니 드물게 지났을것 같습니다. 


철목은 한걸음에 하나씩은 좁아서 한발은 철목을 밟고 다른발은 철목사이 자갈을 밟으며 걸었죠.


끝이 보이지 않게 한없이 멀어져 가는 철길의 끝에 내가 상상하지도 못할 세상이 있는건 아닐까 하는 순진한 마음에 가슴이 설레이기도 했습니다.


왜그리 하루하루 학교다니기가 지겨웠는지 모르겠지만 철길을 따라 걷고 또 걸어서 어느누구의 상상에도 존재하지 않는 신비로운 세상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철길은 그곳으로 데려다 줄수있을것 같았죠.




다섯번째 쓰는 글는 예전친구 봉숙이 이야기입니다.




"어~이, 부잣집 딸래미 영미 하고 숙희 도시락 갖고 일루 와봐."


"오늘 반찬 맛있는거 없는데, 맨날 내꺼만 먹을려고 그래?"


"에이~씨 저잡것이, 갖고 오라면 날래 달려올것이지. 말끝마다 말대꾸를 달고....."


"니 도시락은 안싸왔어?"


"내껀 첫째시간 땡~ 하면 벌써 식사 끝나고 깡통만 남는거 알면서.... 빨랑 까봐."


"야~ , 햄 다 덜어가면 난 뭐 먹으라고....?"


"시끄러, 근데 요새는 뱃속에 애가 들어섰는지 입맛이 무지막지 땡긴다.... 히히히"




별로여상3학년 점심시간 교실에서는 오늘도 칠공주대장 봉숙이 맘에드는 밥과반찬을 걷고 있었습니다.


몇달전만 하더라도 그자리는 합기도 유단자였던 필녀가 앉아서 학교내 모든 권력을 쥐고 있었지요.


하지만 후배들에게 뺏은 돈을 혼자서 독식하고 이웃남학교 1학년 꽃미남영계들을 자신의 자취방으로 유인하는 등 온갖 부정부패가 난무하자 칠공주들 사이에서도 점점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2인자 였던 봉숙이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쿠테타의 명분이 된 사건은 시험기간 중에 일어났습니다. 


필녀는 앞자리에 앉은 우등생 에게서 넘겨받은 컨닝 답안지를 한손으로 가려가며 열심히 배끼고 있었고 뒤에 앉은 봉숙이가 손가락으로 필녀의 등을 몇번 쿡쿡 찔렀으나 필녀는 엉덩이만 씰룩거릴뿐 답안지는 봉숙이까지 넘어오지 않았습니다.


하얀 답안지만 내려다보며 봉숙은 배신과 울분으로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흘렸습니다. 


피와 의리로 맺어진 칠공주가 아니던가.... 이럴순 없다, 이럴순 없는게야.


셋째 시험시간중에 마침내 봉숙이는 벌떡 일어나 자신의 답안지를 두손으로 쫙쫙 갈기갈기 찟어버리고는 교실을 박차고 나가버렸지요.


다음날 학교뒷담 개구멍 바깥 잔디밭에 칠공주들이 모였습니다.


봉숙이를 중심으로 한 개혁진보 소장파와 필녀를 중심으로한 수구 보수파로 양분되어 버린 칠공주들은 양쪽으로 나뉘어서서 드디어 봉숙이와 필녀의 물러설수 없는 결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봉숙이 요것이.... 내가 귀여워해줬더니 겁대가리를 상실했구나.... 눈에 보이는게 없냐?"


오랫동안 도장에서 다져진 필녀의 주먹이 봉숙의 명치를 툭툭 쳤습니다.


마지막 경고 였지요.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봉숙이가 어떻게 나올지 숨죽이고 기다렸습니다.


참고 있던 봉숙이의 두볼이 떨리는것이 보입니다.


"내가... 내가 다른건 다 참겠는데 너같이 의리없는건 오야짓 할 자격이 없어. 응?"


"요런 씨팔.... 너같이 반에서 55등짜리는 겐또나 치고 앉아있어야지, 51등인 내가 작업좀 했다고 그걸 가지고 앵겨드는거니? 이게... 죽을라고 발악을하나.... ?"


필녀가 주먹을 치켜들자 마침내 봉숙이 기다렸다는듯이 번개처럼 이마를 날려서 필녀의 미간에 정통으로 박았습니다.


필녀는 뒤로 휘청하더니 이내 유연하게 중심을 잡았고 콧잔등을 만져보더니 이윽고 자신의 키보다 높은 발질로 봉숙의 안면과 귓가를 여러차례 강타했습니다.


봉숙의 사투는 그야말로 처절했습니다.


장점이라고는 맨날 술취한 아버지에게 얻어맞으며 배운 맷집이 전부였지요. 처음에는 상대가 되지 않는듯하더니 봉숙이 거리를 주지 않고 엉겨붙으며 쥐어뜯고 손바닥으로 후려치며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자 필녀도 버둥거리기만 했습니다.


이리저리 기술을 걸려고 했지만 봉숙의 만만치않은 덩치에 둘은 어느새 땅바닥을 구르며 레슬링의 양상으로 변해갔습니다.


할퀴고 머리를 쥐어뜯고 옷이 벗겨져서 브래지어가 드러났습니다. 


봉숙은 암놈 위에 올라탄 두꺼비처럼 떨어지지않고 투박한 손바닥을 후려쳐서 필녀는 앞니가 부러져 피가 입에 가득 고인채 고개를 풀숲에 쳐박았습니다.


영구이빨처럼 앞니가 사라진것을 피가 범벅이된 입에 손가락을 넣어 확인하고서 필녀는 눈물을 찔끔 흘렸습니다. 


마침내 끈기와 맷집으로 별로여상의 모든 실권을 봉숙이 장악하게 되었고 측근들로 칠공주들을 대대적으로 물갈이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것입니다. 


봉숙천하가 열린것이었지요.




"여보세요. 함부봐라호프 입니다."


"응. 복자니? 나. 바쁘니?"


"봉숙이야? 응, 지금 손님 별로 없어."


"야, 손님중에 쌈팍한 애들좀 있어? 이따가 놀러갈께."


"촌구석 호프집에 무슨 .... 알았어."


군청앞 작은시내 어두컴컴한 지하호프집에는 인근 학교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피고 생맥주마시며 떠드는 비밀 아지트 같은 장소였습니다.


얼마후 봉숙이는 사복을 갈아입고 화장까지 했는지 뽀얀얼굴을 하고 들어서며 싱글싱글 웃었습니다.


"헤~이 복자, 나 왔어."


"엇, 학교에서 온거야? 교복이랑 가방은 어쩌고?"


"맡겨놨지, 뭘 그리 물어보니. 새삼스럽게.... 넌 자퇴하더니 얼굴이 활짝 폈구나."


"그거야 원래 이쁜거고... 근데 너 넘 야하다. 무슨 바지를 그렇게 짧은걸 입었니?"


"킥킥킥.... 눈에 확 띠지? 오빠 만나기로 했거든."


군데군데 내려쏘는 핀조명사이로 봉숙이가 걸을때마다 통통한 허벅지가 더욱 하얗게 보입니다. 미끈하게 날씬한 몸매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귀여운 체격에 남학생들의 시선을 모으며 한쪽구석에 혼자 다리를 포개고 앉았습니다. 


여고생의 서툰 화장이긴 하지만 유리탁자에 얼굴을 비쳐보고 귀여운 투명분홍색 립스틱 입술을 뾰족거리며 머리카락을 쓸어넘겼습니다.


"오늘 그오빠랑 한잔 할거야?"


"모르겠어.... 걍 만나자고 나오라던데."


"그사람 순진하게 생겼던데.. 착해?"


"응... 착해. 착한데.... 좀 밝혀."


"정말? 어떻게?"


"걍.... 만날때 마다 하재 .... 난 편하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벳길려고 자꾸 그래."


"진짜? 정말이니? 너무.... 심하다."


"그래두 착해. 내가 귀엽대."


"참나, 귀엽긴 뭐가 귀엽대?"


"야, 요런 싸가지 없는 것이.... 자세히보지 말고 전체적으로 얼핏보면 러블리하게 귀엽지 않냐?"


"러블리는 무슨.... 칠공주 면도날 들고 날뛰는 모습 봤으면 그오빠가 참 귀여워 하겠네."


"야, 쉿! 그건 비밀. 오빠있을땐 절대로 그런소리 하면 안돼, 알았니? 말하면 죽어."


주방장언니가 내온 안주를 나르고 재털이를 비우고 생맥주 빈잔을 채워주면서 분주하게 테이블을 옮겨 다니는 동안 전문대 다니는 봉숙이 남자친구가 하얀마이와 청바지를 입고 들어서더니 봉숙을 발견하고 쑥스런 표정으로 웃으며 다가가서 앉았습니다.


후배들을 몰아세워서 주머니에서 10원 나올때 마다 한대씩이다... 하던 봉숙이는 완전 다른사람이 됐습니다.


씩씩하던 모습은 간데없고 남자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워하더니 웃을때도 입을 가리고 볼이 불그스래한 새색시처럼 몸을 비비 꼬았지요.


과연 후배들이 봤다면 위장까지 다 토해내고 쓰러질만한 광경이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나누는 이야기를 듣자 닭살이 소름끼칠 정도로 엄습했습니다.


"요새 수업시간에 니 생각나서 공책에 낙서만 한다~"


"오빤, 전화하지.... 나도 요새 오빠생각 많이 해. 점심시간에도 입맛이 없어서 많이 남겼어."


"밥은 잘 챙겨 먹어야지, 안그래도 몸이 약한거 같은데.... 병나면 어쩔려고?"


"몰라, 입맛이 없네.... 걍 친구들한테 내꺼 줘. 먹어라고...."


"봉숙이는 마음이 너무 착하고 여려서 탈인거 같애."


학반을 돌면서 세숫대야만한 도시락통에 부잣집 딸래미들 반찬만 뷔페식으로 즐기던 봉숙이가 수줍은 표정으로 호호호호 웃었습니다.

0 Comments
제목